오른쪽 고관절, 지긋지긋하게 저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존재였습니다.
어릴 때는 아무 문제 없이 크다가, 처음 불편함을 느꼈던 시기는 20대 초반으로, 가방을 한 쪽으로 매고, 높은 힐을 자주 신었던 것이 계기가 된 줄로만 알았어요.
적어도 20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매일같이 아프지는 않았어요.
무거운 것을 오랫동안 들었거나, 오래 서있었거나, 오래 걸었거나, 했을 때만 종종 불편하다가 며칠 조심하면 나아지곤 했었죠. 그래서 나쁜 자세가 원인이겠지, 혹은 스트레칭을 게을리 해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골반의 높이가 오른쪽이 살짝 더 높았고, 다리 꼬는 자세를 즐겨 했고, 의자에 오래 앉을 때면 무릎을 올려 껴앉는 자세를 자주 했거든요. 하여간 몸에 나쁘다는 자세는 다 골라 했으니,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통증을 느끼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3년 전부터였을까요? 한번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며칠이 지나도 불편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 즈음부터 고관절의 불편함 때문에 정형외과, 한의원 등에 들르기 시작했고, 엑스레이도 찍어봤던 것 같은데요. 일자목이나 일자등 소견은 종종 들었지만, 골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도수치료나 추나치료 등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 다녔어요.
고관절의 뻣뻣함, 혹은 주변 근육의 타이트함이 문제일까 싶어서 스트레칭 클래스를 등록했던 적도 있었고요. 치료를 받을 때면 한동안 나아지긴 했어요. 하지만 이런 치료를 매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실비 보험 처리가 되긴 하지만, 1년에 최대 20회까지이고, 한번 치료받을 때마다 소요되는 시간도 아까웠고요.
얼마간 치료를 받아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2~3개월 지나고 나면 다시 통증이 시작되기 일쑤였는데요, 점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수준까지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러닝을 하기는 힘들겠다' 정도였다면, 나중에는 1~2시간 걸은 후 통증이 느껴졌고, 그 간격이 30~40분, 20~30분으로 점점 짧아지더니, 급기야는 5분만 걸어도 고관절의 불편함이 거슬리는 지경에 이르렀죠. 자연스럽게 웬만한 거리도 걷기를 꺼려하게 되었는데요. 워낙 집순이긴 하지만, 통증이 심했던 시기에는 정말 웬만해서는 집밖에 나가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가 '괜히 걸었다가 또 아프기 시작할까봐'였을 정도로, 걷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였어요.
그래서 올해는 다른 병원을 가봐야겠다 싶어, 재활의학과에 갔는데, 이 때 찍은 엑스레이에서 골반 자체의 문제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오른쪽 고괄절 뼈가 정상 위치에서 벗어나 있으니,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MRI를 한번 찍어보라고 권장하셨어요. 그리고 고관절 주위에 염증이 있다고 주사 치료를 권장하셔서 한 달 가량 통원하며 주사 치료와 물리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주사를 놓으며 염증이 줄어드니, 제 고관절이 또 괜찮아지는 것 같길래, 당장 MRI를 찍을 필요는 없겠다 싶었어요. '나쁜 자세 때문에 위치에서 벗어났겠지. 운동으로 고쳐가보자' 정도로 생각하고 지내고 있었죠.
그런데, 주사 치료를 중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MRI가 있는 척추관절전문병원에서 한 차례 더 엑스레이를 찍어봤죠.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MRI를 찍기도 전에 엑스레이를 보시고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본인, 무슨 병인지는 알고 있죠?"
병이라니,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 '아뇨, 저는 골반 뼈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올해 처음 들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그럴리가"라시며 제 증상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비구이형성증
고관절을 덮는 뼈인 '비구' 자체가 선천적으로 모자란 케이스이고, 관절염이 진행이 된 상태이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이랍니다.
처음 진단명을 들었을 때는 꽤 충격을 받았어요.
12년 동안 저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고관절 문제의 원인이 뼈의 구조에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고, 몇 년 전부터 분명히 종종 엑스레이 촬영을 해왔지만, 이제서야 알게 된 게 충격이었고, 돈과 시간 낭비했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괜히 억울해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20대 중반에는 한창 러닝을 즐겼고, 작년엔 걷기에 빠져 집에서 한강을 잇는 다리까지 8~10km 왕복 걷기를 하기도 하고, 출장으로 갔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금문교를 걸어서 건너는 등, 최대 12km씩 걷고 그랬거든요. 비구이형성증이 있는 경우, 걷기, 러닝, 등산 등 고관절에 무리를 주는 운동은 모두 피해야 하는데요.
실제로 작년 금문교 건너기 이후 제 고관절 상태가 더욱 급격히 나빠졌던 것을 돌이켜 보니, 저는 몹쓸 짓을 제 몸에 하고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수술의 시기인데, 인공 관절은 수명이 있어서 너무 젊은 나이에 하면 재수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운동과 관리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50~6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수술해야 재수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답니다. 관절염 진행 상태를 보기 위해 MRI를 찍은 결과 다행히 괴사까지 진행된 것은 아니라서, 버틸 때까지 버터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진단 그 이후, 운동의 방향성이 달라졌어요.
이후, 집 근처 1:1 PT 샵을 찾아가 트레이너 선생님께 제 증상에 대해 자세히 공유하고, 모든 운동을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혼자서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과 홈트레이닝을 해왔지만, 통증 없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겠더라고요. 다행히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안 상태에서 명확히 운동의 방향을 정하니,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트쌤과 운동을 해온지도 어느덧 2개월 가량 흘렀는데, 그 사이 느낀 점들을 다음 글에서 이어 보았습니다.
비구이형성증, 고관절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
비구이형성증, 고관절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
들어가기에 앞서 ※ 이 글은 '비구이형성증' 진단을 받은 한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전문적인 의료적 지식은 아니니, 참고만 하시고 정확한 소견과 치료 방향은 전문가의 소
soyounghanrecipe.tistory.com
꽤 오랫동안 답답해하고, 힘들어해왔던 문제인데, 이제라도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어 다행입니다. 사실 100% 정상인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어요. 저마다 몇가지 불편한 점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거죠.
저와 같이 비구이형성증을 갖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공감과 응원을 전해드리는 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건강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구이형성증, 고관절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 (52) | 2023.08.06 |
---|---|
프로틴 파우더를 쉐이크로 마시지 않는 이유 (0) | 2023.05.12 |